' 남들과 다르게...'

똑 같은 표정에 똑 같은 옷은 왠지 식상하다.
십 수 년 전 제주도에 갔을 때다. 때마침 본선 대회를 앞두고 사진촬영을 하던 미스코리아 후보들을 운 좋게 본 적이 있었다. 그들 모두 훤칠한 키에 조각 같은 이목구비를 하고 있었다. 당시 처음 반응은 ‘정말 크다’였다. 그리고 다음은 ‘정말 예쁘다’였다. 그런데 그 다음의 느낌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후보들의 다소 억지스런 표정이나 옷매무새가 마치 하얀 밀랍 인형처럼 천편일률적으로 똑 같았기 때문이었다. 각 후보 개인으로서의 특징이 무언지 알 수 없었을 뿐더러 누가 누군지 도통 구별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시간이 조금 지나자 예쁘다는 사실 조차도 감흥으로 다가오지 않았었다.

현재 운용업계에는 약 60여개의 자산운용회가가 존재한다. 익숙한 몇몇 운용사를 제외하면 상당수의 운용사는 존재감마저 느낄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러한 존재감은 천편일률적인 투자 철학이나 운용전략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그라지기도 한다.
대부분의 운용사가 대외에 공표하는 전략은 ‘Bottom-up 리서치를 통한 가치투자’이다. 실제로 그러한지 여부를 떠나 ‘Bottom-up’과 ‘가치투자’라는 단어는 자산운용회사라는 명패를 단 이상 떼려야 뗄 수 없는 이름이 되어 버렸다. 결국 모든 회사가 똑 같은 옷에 똑 같은 표정을 짓게 만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대인베스트먼트 자산운용은 참 색달랐다. 전략은 간단하면서도 명료하다. 간단하고 명료하기에 더 색달랐을 수도 있다.
현대인베스트먼트가 제시하는 운용전략은 크게 3가지이다. 먼저 액티브(Active)운용이다. 다른 운용사도 액티브 운용을 하지 않는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인베스트먼트의 액티브 운용은 유망섹터 및 종목에 대한 선별적인 집중투자방식을 의미한다. 믿음이 가는 종목이 있다면 믿음만큼 투자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집중투자방식을 실현하기 위해 시가총액 상위 100위권 종목에 역량을 집중한다. 먹지도 못하는 몇 마리의 물고기를 잡기 위해 망망대해(茫茫大海)에 그물을 펼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물고기의 이동경로를 파악해 하나의 그물로도 가장 많이 어획할 수 있는 곳에 투자하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적극적인 수익률 방어이다. 이러한 전략은 하락국면에서 적극적인 대처로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주식편입비 조절을 통한 자산배분일 것이다. 현대인베스트먼트의 유일한 공모주식형 펀드인 현대프레스티지롱텀주식형의 최근 1년간 평균 주식편입비율은 77%로 매우 낮다. 현재는 누가 뭐래도 하락국면이기 때문이다. 주식편입비율의 변동 폭은 최고 93%에서 최저 63%에 이른다.

이러한 현대인베스트먼트의 운용조직을 이끌고 있는 사람은 류재천 상무이다. 2006년 현대투자자문에 합류한 후 자산운용회사인 현대인베스트먼트로 전환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주도적인 역할의 의미는 투자자문회사와 자산운용회사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겉으로 보이는 차이는 자본금이나 인적 요건 등 법률적인 형태의 차이일 것이다. 그러나 운용의 본질적인 차이도 있다. 투자자문이 개인의 역량이 매우 중요한 요소라면 자산운용회사는 조직의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투자자문은 혼자의 힘으로 회사를 이끌 수 있지만, 자산운용회사는 조직의 힘으로 회사를 이끌어야 한다. 투자자문이 마음에 맞는 특정 고객을 대상으로 운용을 하지만, 자산운용회사는 외부에 공개된 운용성과를 기반으로 불특정 개인을 대상으로 운용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산운용회사는 인적구성 못지않게 회사의 운용방향, 운용전략, 의사결정과정 등이 안정적으로 구축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축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조직원들의 생각이 저마다 다른데다, 운용성과가 지속적으로 나와 주어야 하고, 게다가 주주나 투자자의 인내심이 기대만큼 길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사의 모양이 변할 때에 최초의 시스템 구축이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이 과정에 있어 CEO와 CIO의 역할은 거의 절대적이다.

그렇기에 류재천 상무가 현대투자자문에서 현대인베스트먼트 자산운용의 변화 과정에 있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 의미와 역할이 크다 하겠다. 사실 이러한 역할은 그의 직장 생활에 있어 오랜 연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기은SG자산운용이 처음 자산운용업계에 진출할 때에도 그는 그 자리에 있었고, 튜브투자자문에서도 그랬다.
어쩌면 이런 인연은 처음 직장 생활과도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그의 사회 첫 출발은 한국투신 관제부에서였다. 관제부가 하는 일이 회사시설과 관련된 무언가를 만들고 조정하고 관리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이러한 연관이 다소 비약적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돌이켜보면, 그가 운용본부장으로 현재의 위치에 온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경희대 행정학과 출신인 그는 직종으로는 관제부와 연결될 수 있었나 보다. 그래서 한국투신 관제부로 발령을 받았다. 그러나 금융회사에 들어온 이상 금융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이때부터 세무, 회계, 경제관련 공부를 시작했다. 그 결실은 1997년 사내 펀드매니저 공모에 응시하면서 얻을 수 있었다. 당시 3명만이 펀드매니저로 발탁됐는데, 이때 발탁된 매니저가 민정기, 장동헌 매니저이다. 당시 그의 나이는 35세였다. 류재천 상무가 주식운용팀에 들어갔을 때에 담당 팀장들은 현재 동양투신 본부장인 이형복 매니저, 한국투신의 김영일 매니저 등이었다.

그는 기관펀드를 담당했다. 운용성과도 괜찮아 2001년에는 한투운용 Best Fund Manager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점차 운용의 부담이 가중되기 시작했다. 운용부담은 수익률 부진으로 나타났고 끝내는 운용과 관련 없는 팀으로 발령받기에 이른다. 당시 운용에 대한 생각을 접을까 고민하던 중 튜브투자자문과 인연이 닿으면서 회사를 옮기게 된다. 2003년에서 2004년 동안 튜브투자자문의 CIO로서 국민연금 펀드를 운용해 양호한 성과를 거뒀던 그는 2005년 기은SG운용의 설립과 함께 회사를 옮기게 된다. 그러나 외국계 합작회사이기 때문에 기대했던 그의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결국 오래지 않아 다시 회사를 옮기게 된다. 그곳이 현재의 현대인베스트먼트 자산운용이다.

현대인베스트먼트의 운용전략이 류재천 상무의 생각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꽤 비중 있게 농축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현재 CEO인 박종규 사장의 생각이다. 류재천 상무와 같은 한국투신 출신이면서 투자자문사 경험이 많았던 박종규 사장은 펀드 성과는 절대수익을 추구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이러한 생각이 적극적인 수익률 방어라는 현재의 운용사 전략에도 반영되고 있다.

현대인베스트먼트도 다른 몇몇 운용사처럼 CEO와 CIO가 현업에서 펀드매니저를 했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같은 조직내에 펀드매니저 출신 CEO와 CIO가 있는 경우 둘의 관계는 종종 불안한 공생관계로 묘사되곤 한다. 현대인베스트먼트 또한 그러지 말란 법이 없다. 다만 적정한 긴장은 건강에 더 좋다고 하지 않는가. 불안한 공생관계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때는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방향이 경쟁관계로만 치닫는다면 조직의 불안은 불을 보듯 뻔할 것이다.

한편, 류재천 상무는 현대인베스트먼트 자산운용의 주주 관계도 큰 장점으로 뽑는다. 회사는 현대해상화재보험이 100% 출자한 운용사다. 현대하면 떠오르는 인간적인 조직문화도 있지만 보험회사로서 오래 기다릴 줄 아는 미덕도 있다고 한다. 많은 경우 운용능력은 시간과의 싸움이라고들 한다. 오랜 숙성시간이 지나면 그 진한 맛이 저절로 배어나와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따라서 운용회사를 바라보는 모회사의 자세는 운용회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현대인베스트먼트의 연혁을 현대투자자문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2000년에 이른다. 하지만 현재의 인력과 조직, 전략이 반영된 것은 2007년12월 자산운용회사로 전환된 시점 이후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회사는 이제 갓 돌을 넘긴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앞으로 이 아이가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행착오의 첫 시험대는 첫 걸음마를 뗄 때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현대인베스트먼트의 첫 시험대 역시 현재 유일한 공모펀드인 현대프레스티지롱텀주식의 성과일 지도 모르겠다.
이 펀드에 운용사가 표방했던 모든 전략과 강점이 반영되어 나타난다면 그것만으로도 첫 출발은 순조로웠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제로인 펀드 투자자문 이재순 이사  www.FundDoctor.co.kr, www.Zeroinia.co.kr>

류재천 상무

- 경희대 행정학과 석사
- 한국투신운용 주식운용팀장
- 튜브투자자문 CIO
- 기은SG주식운용본부장
현재 현대인베스트먼트자산운용 자산운용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