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거리 이상의 달리기 경주나 자전거 경기 등에서, 기준이 되는 속도를 만드는 선수를 우린 ‘페이스메이커’라고 한다. 펀드 투자 가운데 중거리 이상의 달리기 경주가 가치투자 스타일을 의미한다면, 이러한 가치투자 매니저들은 마라톤 선수라고 생각해 볼 수 있겠다.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에서 이채원 매니저가 마라톤 선수로 뛰고 있다면, 배준범 매니저는 리서치헤드로써 묵묵히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고 있다. 누구에게 어느 업종을 줄 것인지, 업종에 대한 성과측정은 어떻게 할 것 인지와 더불어, 인사부와 인사교육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직급으로 분류하면 차장급이상은 이채원 매니저가 직접 트레이닝하고, 대리급이하는 배준범 매니저가 담당하며 스타일 원칙을 교육시키고 있다. 포트폴리오 운용측면에서는 이채원 부사장이 ‘10년투자 1’의 MP를 컨트롤하고, 배준범 매니저는 ‘10년투자밸런스 1’의 MP와 추종펀드를 컨트롤한다. 이채원 매니저가 공모 쪽이라면, 배 매니저는 사모나 일임을 총괄한다고 보면 된다.

‘한국밸류10년투자 1’와 상이한 펀드를 받아 들일 것인가? 하는 내부적으로 진통을 겪으며, 원칙이 중요하지만 회사가 유지되어야 원칙을 지킬 수 있는 것이기에 사모/일임 자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작년 초부터 1년 정도 테스트과정을 거치며, 금년 3월 공식적으로 나온 것이 ‘한국밸류10년투자밸런스 1’이다.

기존의 MP와 ‘한국밸류10년투자밸런스 1’의 MP와의 차이에 대해 묻자, 그는 “ ‘한국밸류10년투자 1’이 시장에서 생각하는 가치 운용 고유의 색을 구현한 펀드라면, ‘한국밸류10년투자밸런스 1’은 시장을 보지 않고 개별종목을 보는 방법. 마이웨이로, 수익을 장기적으로 쌓아가는 펀드”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또한, “‘한국밸류10년투자 1’의 1년 베타는 0.5미만,  ‘한국밸류10년투자밸런스 1’는 타겟베타가 0.9이상으로 이 두 개의 MP를 양 극단에 놓고, 매니저는 클라이언트에 따라 중간 지점에 포트폴리오를 구현하면 된다”고 했다.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에는 4명의 차장급 인력이 있다. 모두 이채원 매니저에게 운용을 배웠지만, 스타일에는 차이가 있다. 모두가 공유하는 PER나 PBR이 낮은 주식이라는 원칙에 공통 분모를 두고 있지만,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회사를 좋아한다는 면에서 배준범 매니저만의 특색이 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와 같은 섹터업체를 부품업체보다 좋아하고, 현대차, 기아차를 그 밑에 있는 현대 모비스보다 선호한다고 한다.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회사를 좋아하기에 유통주를 좋아한다고 한다. 아무리 제조업이 잘해도 유통업체가 과점되고, 파워풀한 플레이가 되면 삼성전자도 그 앞에선 을(乙)일수 밖에 없지 않냐는 게 그의 설명이다.

스승인 이채원 매니저와 다른 점으로, 이채원 매니저가 PBR이 낮고 자산가치가 뛰어난 종목을 선호한다면 배준범 매니저는 PBR이 낮아도 PER가 높은 종목은 선호하지 않는다고 한다. 때문에, 포트폴리오를 봤을 때 PER는 배준범 매니저의 펀드가 낮을 수도 있지만, PBR은 더 높다고. 그 차이가 운용하는 펀드의 성과 차이라고 했다.

하나 더 추가해서, 사모와 일임을 운용하는 만큼 클라이언트 요구를 이채원 매니저보다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꼽았다. 기관과 월간 단위의 미팅을 하다 보니, 결과도 중요하지만 중간 단계의 확인을 할 수 밖에 없다며. 어떻게 보면 담당자와의 타협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고객이 있어야 운용도 있으니 어느 정도 니즈를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2010년, 2011년초 최고 피크였던 차화정 마지막 시점에 주가가 정상적인 밴드를 벗어나고, 일본 대지진까지 겹치며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두려웠던 시절도 있었다. 한국투자증권에서 시작했을 당시, PBR, PER, 배당이라는 3개의 지표를 보아 오다가, 2004년 배당이 주가를 설명하는 팩터로서 영향력을 상실했다고 판단했었기 때문에, 믿고 있던 PER나 PBR 지표가 배당처럼 영향력을 상실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결국 기업가치는 PER나 PBR 2가지 요소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고, 큰 시련을 겪으며 더욱 강해져 시장을 훨씬 더 여유롭게 보게 됐다고 한다.

회사가 커버하는 종목이 많다 보니, 업무강도가 타 회사에 비해 높지 않냐는 질문에 “프레임과 툴이 갖춰져 있으면, 체크해야 할 리스트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2007년 모 운용사가 월요일 장을 준비하기 위해서 일요일에 출근해서 준비해야 한다고 한 적이 있었죠. 제 생각은 다르거든요. 많이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맑은 정신에서 정확한 판단을 해야 하는 것이거든요. 예를 들어 연간단위 측정을 한다고 할 때, BM보다 5%p상회하면 일반적으로 펀드가 상위권에 포진하더라구요. BM보다 5%p상회라고 하면 어려워 보이지만, 종목 5개 정도 남들보다 좋은 판단을 내리면 가능한 수치거든요. 피터 린치 말처럼 돌을 많이 들춰봐야 가재를 많이 잡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구정물에서 돌을 들춰보는 것은 아니잖아요? 가재가 살 법한 맑은 물에서 포인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며, 자신의 소신을 당당하게 밝혔다.

증권회사와 운용회사를 오가며 일했던 배준범 매니저는 증권회사에서 고유자금을 운용했던 삶이 사냥꾼의 삶이었다면, 운용회사에서의 삶은 수확을 하면서 씨를 뿌려야 하는 농부의 삶으로 바뀐 게 아닌가 한다며 자신을 농부에 비유했다. 차장이상의 고참이 자신과 사형, 사제 지간이라면 대리, 사원급 직원은 자신의 제자라며, 인재 양성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는 농사꾼 배준범 매니저다. 그의 노력이 있어,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이 가치투자의 명가로 빛나는 것이 아닐까 한다.

< 제로인 매니저리서치팀 김혜숙 www.FundDoctor.co.kr >

배준범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자산운용부 부장

-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 한국투자식탁증권 주식운용부

- 現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자산운용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