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형목(姜秉道) 한일투자신탁운용(주) 채권운용팀장

이력
고려대 경제학 졸업

경력
1995.6 ~ 1998.12 한국산업은행 외화자금부
1999.1 ~ 1999.6 서울증권 투자공학팀
1999.7 ~ 현, 한일운용 채권운용팀장

고형목 팀장은 “펀드매니저”보다는 “수학자”나 “공학도”에 가깝다. 그가 펀드를 운용하는 방식은 일종의 수학문제를 푸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나 대학에서 많이 보던 수학문제 같지만 고 팀장은 한일투신에 매일 이 두가지 문제를 풀고 있다.

그는 “이론적으로 펀드를 운용하는 시스템을 구성하고 매일 헤지 비율을 구하는 것은 피를 말리는 일”이라고 말한다.

고 팀장이 언듯 이해하기 어려운 수학적인 방법으로 펀드를 운용하게 된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투신에 돈을 맡기는 사람들은 아직도 저축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원금을 깍먹는 것은 못할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펀드에 들어와 있는 돈의 성격상 리스크 관리가 최우선이기 때문에 금리변동에 따라 수익률이 변하는 시가평가 채권형 상품을 가능한 한 고정금리부 상품처럼 운용하는 방법을 찾게 된 것이다.

한일투신에서 고 팀장이 운용하는 시가평가펀드 규모는 5000억원정도. 그가 팀장이 된 후 2000억-3000억원 수탁고가 늘었다. 이 펀드의 이름은 SAT펀드다. Stable(안정적), Advanced(진보된), Transparant(투명한)의 약자를 딴 것이다. 투신상품을 저축이라고 생각하고 추가형이라는 조건을 충분히 맞추기 위해서는 SAT적으로 운용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고 팀장은 위의 두 문제를 푸는 방법을 비교적 자세히 설명해 줬다. 고 팀장은 “리스크(투자위험)은 미스매치(Miss match)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펀드의 만기와 자산의 만기가 같으면 리스크는 제로가 된다. 3개월만기 채권을 3개월짜리 채권펀드에 넣었다면 시장금리가 아무리 변동해도 손실을 볼 위험이 없다. 그러나 초과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3개월짜리 펀드에 1년 만기 채권을 넣어서 초과수익을 얻되 나머지 9개월에 대한 리스크를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다. 이 리스크를 어떻게 회피할 것인가.

고 팀장은 산업은행 외화자금부에서 근무하면서 익힌 자산, 부채의 리스크 관리 기법을 펀드운용에 도입했다. 자산은 펀드자금으로 부채는 수익률로 대치하면 비슷한 금융공학적 기법을 사용할 수 있다.

우선 통계적으로 1차적인 헤지 비율을 산출한다. 즉 펀드에 편입된 채권에서 발생하는 이자와 시장금리변동에 따른 손익(Capital Gain/Loss)을 구해서 시장금리변동에 따른 손익을 정확히 상쇄하는 금리선물 포지션을 찾아낸다.

두번째는 시장의 가격추세와 변동성을 주시하면서 최종적인 헤지 비율을 결정한다. 이때 주관적인 시황판단이 개입한다.

고 팀장은 이 같은 과정을 매일 반복함으로써 고객들에게 3개월 단기상품의 경우 100bp정도, 6개월 중기상품은 150bp, 1년 장기상품은 200bp 초과수익을 제시하고 대부분 고객이 원하는 수익률을 맞춰줄 수 있었다.

고 팀장은 편입대상 채권의 가치를 평가할 때도 시장트랜드로 회귀하려는 원리를 이용한다. 채권수익률은 일정한 트랜드에서 벗어날 때 다시 원상 회복하는 경향이 있다.

상대적으로 채권가격이 싸냐 비싸냐를 구분, 위험대비 수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채권을 찾을 수 있다는 것.

고 팀장은 매시간 시장동향을 살피지만 누가, 어떤 채권을, 얼마나, 누구에서 팔았는지는 관심이 없다. 시장을 따라가면서 채권가격이 정상 궤도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를 주시할 뿐이다.

그는 “시장을 전망(forecasting)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따라다닌다(follow up)”고 말한다.

그가 운용하는 펀드가 안정적으로 벤치마크 대비 초과수익을 낼 수 있는 것은 분산투자와 안전채권 위주의 운용이라는 신용위험 회피 방법을 적절히 활용하기 때문이다.

그는 고객들에게 예상 가능한 최저수익률을 말할 수는 있어도 단순한 예상수익률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이 펀드에 가입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최소한의 기대값이 얼마라는 것만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고 팀장은 “우리는 금리입찰에는 참여하지 않는다”며 “부담 가능한 위험을 고객에게 알려주고 고객 스스로 적당한 수익률을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고객도 살고 투신운용사도 사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는 매일매일 전쟁을 치루듯이 숫자와 시장과 씨름 한다고 말한다. 이론적으로 논리 정연한 위험관리 시스템이지만 시장 추세나 채권가격의 적정성 판단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매순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사실 이 같은 주관적인 판단의 성패가 초과수익률을 거두는 요소라는 것이 고 팀장을 만나본 기자의 생각이다.

고 팀장은 자신의 위험관리기법을 설명할 때 자리에서 일어나 정말로 수학문제를 풀듯이 칠판에 수식과 그림을 그렸다.

자신이 운용하는 자금의 성격을 규정하고 리스크의 성질과 종류를 찾아내고 각각의 리스크를 헤지하는 수단과 헤지비율을 정하는 과학적인 과정들은 어느새 칠판을 가득 채웠다.

수학교수가 정열에 들떠 자신의 공식을 풀어나가는 모습과 너무나 흡사했다.

고 팀장은 고대 경영학과를 나와 산업은행에 바로 입사했다. 산업은행 외화자금부에서 과학적인 리스크 관리를 몸에 익혔다고 말한다. 고 팀장은 99년 1월 서울증권으로 옮길 때 장외파생상품시장을 개척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서울증권을 인수한 조지 소로스는 원화시장에서 파생상품을 구현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며 시장진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 한일투신 인수에 참여 채권팀을 이끌게 됐는데 이때가 99년 6월이었다.

“학교 다닐 때도 소주 한 잔밖에 못 마셨는데 대우사태를 겪으면서 소주 1병 반의 주량을 갖게 됐다”며 마음 고생이 너무나 심해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고 팀장은 “투신상품을 이용하는 고객이나 운용자 모두가 리스크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며 “리스크 관리 능력이 없이는 펀드운용을 할 생각조차 하면 안된다”고 단호히 말했다.

<정명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