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 마인드, 언제나 세상 10%의 편에 선다.

먼저 덕담을 건넸다. 매년 큰 기복없이 중상위권의 수익을 올리는 비결이 뭐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는 질문이 영 마땅찮은 눈치였다. 웃기는커녕 손사래부터 쳤다. 마치 꾸준한 성과를 올린다는 건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투다.

"그건 틀린 얘깁니다. 2000년도에 코스닥이 상투를 칠 때까지, 즉 코스닥 버블로 주식시장이 한없이 오를 때 제 성과는 볼품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말조차 자부심처럼 들렸다. 그의 사연이 궁금해진다. 신영투신 허남권(41) 주식운용1팀장은 신영증권에서 영업과 상품운용 업무를 하다가 96년부터 본격적인 펀드매니저로 변신했다. 이후 그는 '작은' 종목들에 투자해 차곡차곡 수익을 쌓아 올렸다.

그는 시장 뒤켠에서 야금야금 수익을 냈다. 코스닥의 버블이 턱없이 부풀어 오를 때는 죽을 쑤기도 했지만, 결국 '버블 주식'들을 비켜간 게 약이 됐다. 따라서 버블 장세의 수익률 게임에서 뒤쳐졌던 기억은 오히려 자랑스럽다.

허 팀장은 중소형 가치주 전문 투자가다. 벌써 7년 째 작은 종목들과 씨름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그가 포트폴리오에 묵혀두었던 종목들을 보면 그의 운용스타일을 대충 알 수 있다. LG가스, 삼천리, 동일방직, WISCOM, 삼양제넥스, 유한양행, 농심, SK가스, 율촌화학, 동아타이어 등이 작년에 허 팀장의 포트폴리오에 둥지를 틀었던 주식들이다.

그는 1년 이상 장기소외 종목, 주가의 하방경직성이 있는 저평가 종목, 배당수익률이 높은 종목 등을 우선적으로 고른 뒤 포트폴리오에 넣어둔다. 그런 뒤 '시간을 믿고' 싸움을 벌인다. 주가가 고향으로 돌아올 때(제 자리를 찾을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같은 과정을 통해 허 팀장은 철저하게 '소수 마인드(Mind)'를 익혔다. 시장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예컨대 그는 우량한 주식의 가격이 빠질수록 불안해 할 게 아니라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로 이용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기업 가치를 믿고, 자기자신을 믿고, 시간을 믿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국내처럼 변동성이 심한 시장에서는 장기투자가 가장 믿을 만하죠. 사실 지난해 롯데칠성같은 주식이 엄청난 시세를 냈던 이유는 그 회사가 갑자기 좋아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기다린 덕분에 가치를 인정받은 것 뿐이죠."

허 팀장은 IMF 외환위기 때 이런 식의 투자를 통해 재미를 봤다. 98년 종합지수가 300포인트 대에서 몇 달째 횡보하고, 이 지수조차 비싸다고 생각할 때 그는 펀드의 한도껏 주식을 채우는 '풀(Full) 베팅'을 감행했다. 이후 결과가 어떻게 됐을 지는 종합지수 차트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세상과 반대로 베팅을 한 뒤 거둔 성취감은 그에게 확신을 심어주었다.

이를테면 그에겐 나라가 망해도 주가가 싸다는 사실은 분명 구미가 당기는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울러 그는 주식을 처음 시작할 때 버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안 깨지는 법을 배운 게 퍽이나 다행스럽다고 생각한다.

현재 신영투신 주식운용1팀은 혼합형 펀드를 전담하고 있다. 따라는 허 팀장은 '벌고 지키는' 전략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저평가된 주식을 남보다 먼저 주식을 사고, 고평가되기 전에 먼저 파는 전략을 쓴다. 그래서 상승장이 올 때 굉장한 성과를 내는 매니저를 따라 잡을 수는 없지만 목표한 수익률을 내는 일엔 누구보다 자신 있다.

아울러 가치투자의 전도사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외국계 투자자와 겨뤄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한국 주식시장이 차려놓은 밥도 자신이 많이 먹었고, 몸으로 부딪히며 배운 작은 종목들에 대한 지식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허 팀장은 특히 고배당주를 눈 여겨 보고 있다. 원래 그가 투자하는 종목들의 배당이 짭짤하지만 앞으로 '그 맛'이 한층 업그레이드될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주가가 떨어져 배당수익률이 높아진 가치주들은 더욱 구미가 당기고, 배당에 대한 이중과세 문제 등도 풀릴 것으로 기대된다. 주주가치를 높이겠다는 노무현 정부의 정책 또한 배당주 쪽에 힘을 실어 줄 것 같아 경영이 투명한 '노무현 스타일'의 주식이 각광을 받을 것 같다.

늘상 시장에 치여 사는 허 팀장이지만, 여가시간엔 주식과 담을 쌓고 산다. 꼬박 12시간을 여의도 증권가에서 보내고 남는 시간엔 여행이나 등산, 영화감상 등을 즐긴다. 시장에선 다수가 가지 않는 길을 가고, 시장을 벗어나면 시세와 관련 없는 일에 몰두하는 게 허 팀장이 세상을 사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