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비결은 정석투자,,,이제 조직 정비 박차

 
'딱 10년 운용을 했다. 그리고 살아남았다.'
10 년간 펀드매니저 생활을 한 이창훈(41) 상무(동원투신운용 CIO)에게선 '살아남은 자의 여유'가 느껴진다. 늘 선두권의 수익을 냈던 건 아니었지만, 안정적인 성과를 내왔다는 게 큰 자부심이다.

변동성이 심한 국내 주식시장에서 펀드매니저들이 하나 둘씩 자취를 감출 때 그는 정석투자를 강조했다고 한다. 장수의 비결 역시 색다르지 않다. 투자위험을 감안한 뒤 리서치를 중심으로 운용을 해왔다는 게 비결 아닌 비결이다.

"종목선정이 자사배분 전략보다 우선합니다. 종목을 고를 때는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높고, 주가수익률(PER)이 낮은 종목들을 눈여겨봅니다. 평균적으로 주당순이익(EPS)이 높은 종목들이 이익을 내 줍니다."

이 상무는 89년 국민투신 조사분석역으로 업계에 발을 들인 뒤 92년부터 만 10년 동안 운용역으로 주식시장을 누볐다. 그러면서 뮤추얼 펀드, 외수펀드, 옵션 펀드, 스폿 펀드 등 온갖 펀드를 경험했다. 새로운 펀드가 출현할 때마다 그의 손마디는 쉴 새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만큼 기억에 남는 일도 많다. 93년엔 손실규모가 1천억에 달했던 원금보장형 펀드를 맡아 손실 규모를 수백억원 줄이기도 했고, 외수펀드를 운용해 고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운용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다.

이 상무는 지난해 7월 동원투신의 자산운용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직접 펀드를 운용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팀 운용이 대세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모든 구성원이 매니저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게다가 그는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프로세서에 의한 운용시스템이 도입될 때 참여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효율적인 팀제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한다.

이 상무는 97년 삼성과 JP모건이 합작한 삼성 JP모건 투신운용이 프로세서와 팀에 의한 운용 시스템을 구축할 때 직접 참여했고, 98년엔 삼성투신 주식운용팀장을 맡아 일을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리서치와 프로세서의 중요성을 몸으로 느꼈다. 하지만 경직된 팀 운용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투자 시스템과 프로세서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강조하지만, 동원투신 매니저들의 재량권은 오히려 다른 곳보다 큰 편이다. 가령 주식 매니저들이 펀드에 종목을 편입할 때 모델 포트폴리오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게 아니라 30% 정도의 재량권을 부여하고 있다.

이 상무는 이밖에도 회사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우선 구성원의 1/3 정도를 교체했고, 파생상품 운용 파트도 도입했다. 리스크 부문도 사후 관리뿐만 아니라 사전에 철저히 리스크를 검증하는 쪽에 무게를 실었다. 아울러 리서치 기능에도 힘을 실어주는 등 그는 회사를 재정비하는 일에 우선 무게를 뒀다.

그는 시장변화 역시 몸으로 느낀다. 시장도 많이 합리적으로 변했지만 아직 기대에 못 미치는 부문도 많다.

"과거엔 절대수익률만 중시됐지만 지금은 벤치마크와 대비한 수익률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좀더 나아가 시장에선 위험조정수익률이라는 개념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채권 쪽은 시가 평가가 도입된 뒤 운용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반면 주식펀드들은 과거엔 장기펀드가 많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단기화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베테랑 매니저를 꿈꾸는 젊은 매니저들에게도 할 말이 많다. 그는 국내 매니저들이 시장감각은 많이 발달돼 있지만 본질적인 가치분석은 약하다고 말한다. 즉 트레이딩 능력은 어디 내놔도 뒤지지 않지만 밸류에이션 쪽은 취약하다는 것이다. 매니저별로 운용스타일이 제각각이지만, 결국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어야 결국 선(善)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이 상무는 유명 소설가 이외수씨의 친동생이다. 순수미학에 탐닉한 형과 냉혹한 매니저의 세계에서 살아남은 동생 사이엔 사실 별다른 공통점이 있을 것 같지 않다. 형의 치렁치렁 늘어뜨린 머리 모양과 동생의 말쑥한 모습만큼이나 두 직업은 관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상무는 둘 다 창조성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비슷한 직업이라고 얘기한다. 상상력을 밥벌이의 밑천으로 삼는 작가와 주식의 본질가치와 시장의 기대 사이에서 색다른 영감을 얻어야하는 주식 매니저 모두 창조성이 어떤 직업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형보다 동생의 처지가 더 다급해 보인다. 형은 4년만에 내놓은 '괴물'이라는 작품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동생에겐 작품으로 평가받는 일보다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일'이 시급한 것이다. 이 상무는 투자 프로세서와 운용역의 창의성을 조화시키는 일, 고객의 니즈에 부합하는 신상품을 개발하는 일, 회사 내부 운용역량을 강화하는 일 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장태민(amigo@zero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