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스타들이 사라졌다. 일부 펀드 매니저들은 운용사의 최고경영자나 CIO로 ‘영전’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화려한 장타로 기량을 뽐내던 많은 별들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국내 주식시장의 출렁거림만큼이나 매니저들도 영욕의 시절을 보낸 것이다.

특히 대형 투신사 내에서 잘 나가던 선배 매니저들이 하나 둘씩 업계를 떠날 때는 ‘선수’들은 더욱 긴장한다. 홈런을 많이 치는 선수는 삼진도 많이 먹는 법이다. 실상 이 업계에서 생존하기 위해선 홈런보다는 꾸준한 안타제조기가 훨씬 안정감이 있는 셈이다.

누구보다 스타매니저들의 부침을 많이 지켜봤던 한투운용의 이형복 팀장은 무리를 하지 않는다. 스스로 꾸준히 시장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자평한다. 그렇지만 그는 얼핏 오해하기 쉬운 얘기를 한다. 현재 자신의 모습은 가치투자를 하면서 매매회전율(turnover)이 높을 수밖에 없는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가치투자하면 흔히 장기투자와 등치시키는 경우가 많지만 그는 그런 고정관념을 거부한다.

“시장 변동이 원체 심하니 매니저 자신이 넋놓고 장기투자를 한다는 건 다소 모순이 있습니다. 국내시장의 종목들은 순식간에 목표주가에 도달해 버리는 경우가 많고, 무작정 장기적으로 접근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빠른 투자 판단을 강조한다. 소문이 난 종목은 사실상 재료가 주가에 절반 혹은 2/3 이상 반영된 경우가 허다하고, 미적거리는 건 그다지 권할 바가 못 된다. 그래서 그는 의사결정을 최대한 빨리 내리려고 노력한다.

“기업탐방해서 최종 의사결정까지 걸리는 시간이 1주일 이내입니다. 이건 순전히 시행착오의 결과죠.”

이 팀장은 투자판단이 틀리더라도 의사결정을 빨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더구나 판단은 맞지만 투자결정이 느린 것은 판단 자체가 틀리는 것보다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주식이라는 살아 꿈틀거리는 물건을 다루는 데는 시간과의 싸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매매 빈도는 다른 매니저보다 많은 편이지만, 시장경험은 그를 종목 쪽에 좀더 치중하도록 만들었다. 10년간의 경험을 통해 그는 시장 변수가 너무 많아졌다고 느끼고 있다. 차라리 종목만 집중적으로 파고 드는 게 더 낫다고 느낀다. 물론 개인적으로야 바텀(bottom), 즉 기업가치 쪽만 보고 싶지만 여건은 그렇지 못하다. 장세를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비교적 적극적으로 사고 파는 가치추구형 패턴을 선택한다.

이 팀장은 현재 설정규모가 1500억원이 넘는 TAMS그랜드슬램주식 펀드 등 7천억원 이상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팀 운용 체제로의 정비 과정에서 고생도 많았고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현재는 조직이 훨씬 안정감을 더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 자신은 올해 종목 집중투자로 상당한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물론 특정 종목을 얼마 동안 보유하겠다는 생각보다는 편입 후 목표주가에 도달했을 때는 미련없이 팔았다.

그는 특히 기업 이익의 증가속도에 주목하고 있다. 이익이 꾸준히 늘어나는 것도 좋지만, 이익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지에 더 관심이 많다. 특별한 노하우는 없고, 다만 시장에 믿음을 주면서 실적이 좋은 업체들에 구미가 당긴다고 말한다. 따라서 월별로 실적을 발표하는 업체들을 주목하고, 그 중 괜찮은 종목을 골라 집중투자하는 것도 그가 즐겨하는 투자법이다.

그는 자신이 투자에서 특별히 실패했다고 느껴지는 기억이 없다. 오히려 그랬기 때문에 여기까지 오지 않았겠느냐며 되묻는다. 과감할 때 과감해야하지만, 무리한 투자는 절대적으로 피해야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간혹 ‘큰 것’을 쏘아대는 공포의 1할 타자보다는 꾸준히 안타를 쳐내는 선수가 훨씬 팀에 보탬이 되는 법이다. 안타치는 데 익숙해지다 보면, 펀드 이름처럼 그랜드슬램(만루홈런)도 나올 수 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