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한 매니저? 아니, 나는야 정통파

신한투신 유식열(38) 채권운용팀장은 정통파다. 직구와 커브 등 단순 구질로 승부하는 정통파 투수를 떠올리게 한다. 파워커브나 포크볼같은 근사한 무기는 장착하지 않았지만, 그에겐 남다른 배포가 있다. 또 지난해부터 그래왔듯이 역부러 생소한 구질을 구사할 생각도 없다.

현재 시장에서 가장 정통적으로 운용하는 것으로 보이는 신한투신의 채권운용 스타일은 국공채 위주의 포트폴리오 구성과 금리 따먹기로 요약된다. 물론 딜링도 하고, 스프레드 거래도 하지만 그런 건 어디까지나 양념이다. 선물도 듀레이션을 조정하기 위한 비용의 개념으로 접근한다. 즉 신한의 채권형 펀드 이름 앞에 붙어있는 '인컴 플러스'가 운용스타일을 상당 부분 대변해 주고 있다.

유 팀장은 지난 90년 한국투신에 입사한 뒤 2001년 말까지 그 곳에서 10년 동안 채권과 씨름했다. ‘장부가 시절’과 IMF 위기를 그 곳에서 보낸 뒤 지난 해 초부터 신한투신의 채권팀을 이끌고 있다. 그는 장기 펀드, 중기 펀드, MMF 등 당시 해 볼만한 것은 다 해 본 뒤 크게 느낀 게 있었다고 말한다.

즉 운용결과는 어디까지나 고객들의 투자 판단에 의해 나온다고 상식적인 생각이 그것이다. 따라서 운용역은 고객의 자산 배분 등 투자에 대한 욕구를 염두에 두고, 의사 결정을 하는 사람일 뿐이라는 게 지론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채권의 유동성에 문제가 있거나 채권의 가치 평가 등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영 땡기지 않는다.

하지만 말이야 쉽지 그렇게 하긴 힘들다. 고객이 투자는 해야겠는데 판단에 대해 갈피를 못 잡는 경우도 있고, 매니저의 의견이 몸 담고 있는 회사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사실 많은 매니저들에게 해당되는 얘기겠지만, 회사의 마케팅이나 영업 쪽과의 갈등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 저 역시 카드채 펀드를 하자는 회사의 요구를 받았을 때 대처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고통스러웠다는 표현이 맞겠죠.”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선 매니저마다 의견이 다를 것이다. 많은 사람이 매력적인 기회로 여길 수 있었지만, 그는 시장의 비합리성 등으로 엄두도 내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고객이 회사채든, 카드채든 특정한 편입자산을 원하고, 위험을 감내할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는 자신의 현재 생각이 회사의 입장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달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그와 얘기를 나누다보면, 많은 채권 매니저들의 주장처럼 시장의 후진성 때문에 아직 채권 펀드가 제 설 땅을 찾지 못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회사채는 적정한 가치평가가 안되고, 분석할 길조차 막연하다. 회사채든 금융채든 유동성 문제를 ‘과도하게’ 고려해야 하는 아픔이 있다. 이런 이유 등으로 신한투신의 채권형 펀드는 국공채 위주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미국 채권 펀드들 가운데 투기채 펀드들의 수익률이 가장 좋아요. 그 곳은 종목 수백개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기 때문에 한 두개가 망가져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채권 하나에 문제가 생기면 펀드 자체가 무너져 버립니다. 팔려고 할 때 사주는 사람도 없고요.”

그가 카드채와 옵션CP 등에 대해 눈독을 안 들인 이유는 ‘정상적인’ 평가와 거래가 안 되는 상황에서 위험을 짊어질 형편이 못 된다고 느끼기 때문이었다. 아울러 스왑이나 변동금리부채권(FRN)에도 손을 안 되고 있다. 금융채 펀드는 세팅된 것에 한 해 선보이고 있다.

“옵션CP란 것도 알고보면, 8%의 스트레이트 본드를 6%로 짤라서 만든 식이죠. 당연히 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FRN도 발행사가 다변화하고 신용도가 더 커져야 투자 메리트가 살아나겠죠. 물론 유동성 등의 문제에 대해 시장 전체적으로 깊이가 좀 더 깊어져야 한다는 건 두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유 팀장은 아직 시장에 대한 뷰(View)를 바꾸고 있지 않다. 여전히 경제에 대해 장담할 수 없고, 따라서 금리 상승에 큰 무게를 두고 있지는 않다. 신한펀드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국공채 펀드로 수익의 90%를 이자에서 건지겠다는 태도에도 변함이 없다. 어떻든 그는 국고채 투자로 지난 해와 현재까지 큰 재미를 봐왔다. 그리고 6개월 정도 투자하는 개인이 국공채 장기형 펀드에 자금을 맡기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는 얘기를 빼놓지 않았다.

유 팀장은 이름(‘유식’렬) 때문에 ‘무식이’란 별명을 얻었다. 자신도 이 별명이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다소 우스개가 가미되긴 했지만, 사람 좋아하는 다혈질에 단순무식하고 폭음을 좋아하는 촌뜨기 스타일이라는 게 그의 자평이다. 그는 대학 시절 조정 서클에서 활동하고, 학사장교로 군문(軍門)을 나온 덕에 조직관리에는 누구보다 자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