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전수전 겪은 타이밍 승부사

헤르메스투자자문의 박성근(41) 사장은 다부진 사람이다. 시쳇말로 '깡다구'가 느껴진다. 게다가 그는 승부사 기질이 강한 사람이다. 모진 경험도 많이 했지만, 최고의 수익률로 업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의 경력은 흡사 그리스 신화에서 재간둥이로 나오는 전령의 신, '헤르메스'를 연상시키다.

박 사장은 98 년 상반기에 시장대비 50% 가까운 높은 초과 수익률을 기록하기도 했고, 99년엔 모두 900억원에 이르던 스팟(Spot) 펀드를 일찌감치 상환하는 능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박 사장은 91년 대우증권에 입사한 뒤 주식 운용역으로 경험을 쌓은 뒤, 계열사인 서울투신에서 주식 운용팀장을 지냈다. 지금은 사장이라는 지위 때문에 운용과 회사경영이라는 두 가지 짐을 떠안고 있다.

박 사장은 마켓 타이밍으로 승부를 거는 매니저다. 이런 특징은 그의 시장관과 운용스타일에 잘 배여 있다. 그는 종목 발굴에 중점을 두는 매니저들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편이다.

"투자할 때 필요한 두 가지, 즉 마켓 타이밍과 종목 실렉팅(Selecting)은 펀드매니저의 영원한 숙제와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국내시장은 마켓타이밍이 어느 곳보다 중요한 곳이죠. 물론 대주주의 이복동생까지 줄줄이 꿰고 있는 몇몇 진정한 가치투자자들은 존경스럽지만, 그런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특히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진정한 가치투자자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얘기한다. 예컨대 돈을 맡긴 쪽이 언제 환매를 요청할 지 알 수 없다. 또 종목선정이 힘을 받기 위해선 몇 년을 기다려야 하는 수도 있는데, 이런 일은 지금의 풍토로 볼 때 기대하기 힘들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가 마켓 타이밍을 중시하게 된 데는 통상 펀드의 성과에서 종목 실렉팅이 기여하는 정도는 10% 남짓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한 몫했다.

다만 기민하고 효율적으로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선물이나 옵션을 아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즉 선물은 주문 체결상의 이점과 낮은 수수료, 마켓 임팩트가 없다는 점 등의 이유로 훨씬 효율적인 운용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국내 기관들은 대부분 자금을 맡길 때 파생상품 활용에 제약을 걸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파생을 활용할 때 레버리지를 걸지 않고, 옵션은 매수만 하면 생각처럼 그렇게 위험하지 않은데, 현실이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고 덧붙인다.

어떻든 박 사장은 다양한 전법을 사용하는 시장참여자였다. 그는 98년 선물을 활용하는 매니저가 많지 않을 때 풀 헤지(full hedge)를 하기도 했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큰 펀드라고 할 수 있는 300억원 짜리 펀드를 100% 헤지해 상반기에 시장대비 48% 초과수익을 기록했다.

"그 해엔 모든 펀드를 일년 내내 풀 헤지했습니다. 말이야 쉽지만 무진장 피곤했죠."

게다가 항상 예측이 맞아 떨이진다는 법은 없다. 그 해 12월 지수가 110포인트나 오르는 등 폭등장세가 연출됐을 때 그의 기준가는 그냥 제자리 걸음만 했다. 당시 그는 밥도 먹지 못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 일로 이후엔 풀 헤지를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살기 위해서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다만 그는 요즘 매니저들한텐 그런 열정이 약한 게 아쉽다고 털어 놓는다.

박 사장에겐 99년 서울투신에 있을 때의 기억도 잊을 수 없다. 자신이 운용하는 5천억원 규모의 펀드들에 현물은 2500억 정도 넣어놓고, 선물로 편입비 조절을 했다. 채권은 1200억~1500억원 어치 편입해 놓고, 당시 10%가 넘는 이자를 따 먹었다. 물론 환매를 대비해 콜(Call)도 1천억원 이상 활용했다.

이 당시 박 사장은 대우채를 편입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사실은 지금도 박 사장에겐 일종의 자부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룹 전체가 나자빠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회사를 떠날 생각도 했지만, 그는 대우사태가 일어나고 임원들이 옷을 벗고 쫓겨날 때까지 그들을 도왔다. 그 뒤 다른 투신사와 자문사 각각 한 곳을 옮겨 다니다가 지난 해 헤르메스의 사장으로 오면서 '부초'같은 역정을 지속했다.

이 곳으로 옮겨올 때 그는 운용하던 펀드의 재계약 건을 도와주고 자신은 빈손으로 왔다고 한다. 그의 얘기엔 열정과 동시에 고단함이 묻어난다.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의 격렬한 파도를 헤치며 나왔지만, 지금 자신 앞에 놓여 있는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다. 당장 지금의 운용규모로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다. 하지만 그는 업계 매니저들에게도 할 말이 많다.

"운용역들이 좀더 책임감을 지녀야 합니다. 액티브 펀드매니저들이 마치 인덱스 펀드를 운용하는 것처럼 종목을 시장 비중대로만 편입하는 것은 '중간만 하자'는 보신주의가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큰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투자전략을 세우는 박 사장은 현 장세에 대해 투자자들이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계적인 공급과잉이 해소되지 않았고, 국내기업들 중엔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업체들이 많아 질 것이다. 또 미국이 세게 망가질 가능성도 높아 보이고 북한 핵 문제, 대기업 분식회계, 카드사 거품 등등 한국경제 앞에 놓여있는 암초가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섣불리 투자하지 말고 수요처가 확실한 종목, 경기기복이 없는 종목들 위주로 접근하는 게 유리할 것같다고 말한다. 물론 불안한 장세는 자신이 경영하는 회사를 더욱 힘들게 함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한번 마음가짐을 다잡는다. 그는 4개월 전부터 담배를 끊었다. 한 때 회사에 10보루씩 담배를 재어놓고 피워 없었지만, 몸이 축나서 그런 관행은 없앴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