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맥과이어의 사랑과 열정

지금으로부터 약 8년 전인 96년에 미국의 미남 배우 탐 크루즈(Tom Cruise)가 주연했던 제리 맥과이어(Jerry McGuire)라는 영화가 국내에서 상영됐다.  

스포츠 에이전시인 제리는 그 바닥에서는 모두가 인정하는 실력자다. 어느 날 그는 “돈을 위해서라면 거짓도 서슴지 않는 비즈니스 풍토에 신물이 난다”면서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인간”이란 철학을 담고 있는 제안서를 만들어 회사로부터 해고를 당한다.

펀드 매니저가 제리와 같은 주장을 한다면 어떨까? 현실을 무시한 이상주의자라고 손가락질을 당하지는 않을까?

외환투신의 류희태(40) 본부장에게 투자철학을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상당히 엉뚱했다.

“저의 투자철학은 ‘고객을 사랑하고 펀드를 사랑한다’입니다.”

고객의 돈이라는 개념을 확실하게 체득하지 않은 매니저는 실력과 무관하게 단연코 거절한다.

투자철학으로 고객과 고객의 돈에 대한 사랑과 열정에 바탕을 두고 있어야만 ‘제대로 된 운용’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운용을 하는 데 무엇보다도 도덕성을 강조하고 도덕적 해의(Moral hazard)가 큰 위법 행위 중의 하나라는 것을 생각하면 ‘사랑’이라는 철학이 이상적으로 들리지 만은 않을 것이다.

그가 추구하는 운용은 1등이 아니라 평균 이상의 수익률을 내는 것이다. 최고만을 위해 달리다보면 운용에 무리가 따르게 마련이고 편법을 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완벽한 콩글리쉬로 always above average’라고 합니다…”
멋적은 표정이지만 목소리는 누구보다도 열정이 담겨 있다.

“저는 듀레이션 배팅은 안 하는 매니저라고 공언을 합니다. 금리 방향성 예측은 신의 영역인데 이런 불확실성에 어떻게 여기에 배팅을 합니까?”

그는 듀레이션 배팅을 하는 매니저를 신의 영역에 대한 신성불가침(?)을 범한 중범죄인 다루듯 한다.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단기적으로 추세에 휩쓸리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딜링을 추구하는 매니저와는 같은 배를 탈 수 없다고 한다.

다른 운용사에 있을 때 사표까지 품에 넣고 지켜낸 고집불통 운용방식은 어려울 때 빛을 발하는 법이다. ‘01년 9.11사태 때 금리 급등 상황에서 그의 포트폴리오는 고객의 자산 가치를 잘 보호했다.

고객의 자산이라는 것을 체득하지 않은 매니저는 경력과 능력이 출중해도 초라한 경력(?)을 가진 투신사 출신을 선호한다. 고객에 대한 사랑, 고객 자산을 아끼는 마음가짐이 돼 있어야만 매니저로서 자격이 있다는 원칙론을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

다소 편견이 섞인 고집스러운 인재 등용론에 반기를 들 수 있겠지만 사고의 출발점이 고객이어야 한다는 원칙에 대해서 허용 한도를 한치도 줄 수 없다는 점에선 수긍이 간다.

제리가 “인간 주의”에 대한 보고서를 쓰고 회사에서 쫓겨 났을 때 그의 곁에 남은 유일한 고객은 티드웰(쿠바 구딩 주니어 역)이라는 럭비선수였다. 그는 항상 “쇼우 미 더 머니!(Show me the money!)”만을 주문처럼 외쳐대며 돈을 벌게 해 달라고 제리에게 떼를 쓴다. 그러나 제리는 티드웰을 진심으로 아꼈고 사랑했기 때문에 티드웰의 성공의 주역이 됐고 고객을 넘어선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펀드에 돈을 맡기는 고객도 매니저의 철학이 뭐든 오로지 “쇼우 미 더 머니”만을 외쳐댈지도 모른다. 그래도 ‘고객’과 ‘고객의 돈’을 사랑한다.<정승혜>(www.funddoct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