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 하늘을 난 이유

삼성투신 정재학 매니저(36)에게 2003년은 누구보다 짜릿했던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장이 떴다고는 하지만, 그가 운용한 드래곤승천주식3-24호는 종합지수 상승률을 두 배 이상 앞지르는 수익률을 기록했다. 설정규모 100억원 이상의 성장형 공모 펀드 중 유일하게 60%를 넘는 초고수익을 만끽한 것이다. 아울러 그가 운용했던 펀드들은 모두 시장을 크게 앞지르는 고수익을 구가했다.

정 매니저는 서둘러 지난 해의 성과를 운(運)으로 돌렸다. 사실 극심했던 종목장세는 정 매니저의 포트폴리오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그는 지난 해 성과에 대해 '행운 플러스 팀제 운용' 덕분이라고 겸손을 떨었다. 그리고 어느새 지난 해의 성과는 부담으로 작용하는 듯했다.

정 매니저는 공격적이다. 그러나 좀 다르다. 포트폴리오를 시시각각 개편하면서 시장에 대응한다는 얘기와는 거리가 멀다. 선물을 사용하지도 않고, 주식편입비를 다이나믹하게 조절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공격성향이 두드러지는 이유는 그가 선호하는 종목들의 색깔 때문이다.

그는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는 주식보다 성장 모멘텀이 큰 종목에 주목한다. 즉 속도보다는 가속도에 더욱 무게를 두는 타입이다.

“싼 주식을 찾는 게 중요한데, 싸다는 것의 의미를 정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유지가능한 경쟁력(Sustainable Competitiveness)을 보유한 기업을 찾는데 주력합니다. 또 기업이 산업 내에서 차지하는 위치도 따져봅니다.”

물론 경쟁력있는 기업을 찾는 건 모든 매니저들의 공통된 관심사다. 정 매니저는 다양한 루트로 종목들을 살펴본다. 특히 그는 특정 종목의 이비 에비타(EV/EVITDA)나 자기자본이익률(ROE) 등과 같은 재무적 요소 뿐만아니라 기업의 브랜드 파워, 시장 내에서 차지하는 포지션 등을 집중적으로 따져본다.

예컨대 특정 종목의 산업내 포지션의 중요성은 업종 대표주를 선호한다는 얘기와는 다르다. 즉 뛰어난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 않더라도 기업간 상거래 관행의 변화, 거래선의 변경 등으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종목들이 있다. 그는 이같은 기업들의 변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탐(貪)한다.

그가 지난해 상반기에 짜릿한 수익을 올렸던 이유 중 하나는 NHN과 같은 인터넷주의 공의 컸는데, 그는 시장을 머릿 속에 미리 넣고 있었다. 포트폴리오 내에 편입한 것은 그 전 해였지만, 인터넷이 진화한다는 점을 유심히 관찰했고, 업체가 가입자 기반을 활용하는 마케팅 능력을 주시했다고 한다.

꼼꼼하게 정리하는 버릇도 자신이 하는 일에 확신을 심어준다. 관심 있는 종목에 대해선 자신이 직접 수십 페이지에 이르는 문서를 작성해 파일로 저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게을러서 뜻대로 안 된다고 말한다. 정 매니저는 가치투자를 지향하지만, 3~5년을 기다릴 수 있는 포트폴리오 전략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지난 15년간 박스권에 갖혀 출렁거렸던 국내 시장의 특성을 고려한 것이다. 따라서 그의 투자 패러다임 속엔 이익과 성장의 모멘텀, 즉 속도보다는 가속도에 대한 선호가 녹아있다.

정 매니저는 자신을 창의적이고 변화무쌍한 일을 좋아하는 성격이라고 말한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증권사에서 영업을 했다. 금융실명제가 도입됐던 93년 그는 빌딩숲을 쏘다니며 고객 돈을 유치하러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6~7번을 방문했던 한 업체의 사장이 돈을 맡기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건수를 올린 순간이었으나, 그는 덜컥 겁이 났다. 주식은 자신이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오만이었다고 깨친 것이다. 급기야 그는 외국으로 훌쩍 유학을 떠났다. 미국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았고, 이후 현지에서 회사를 다녔다. 시장 리서치를 하는 회사였는데, 거기서 그는 다양한 시장 데이터를 다루었다고 한다.

그 즈음 그는 펀드 매니저 일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아 국내의 운용업계로 진출했다. 그는 2002년 가을까지 회사에서 투자분석, 즉 애널리스트 업무를 담당했고 이후 본격적인 펀드 매니징에 나섰다. 아직 운용경험은 일천한 편이지만 지난 해 성과를 보면, 첫 스타트는 현란했다.

여전히 시장 생리를 이해하고 싶다는 학구열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정 매니저는 이제 시장을 팔아서 고객의 돈을 유치하던 전략(지수를 예측해서 고객을 유치하는 전략)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종목 발굴을 통한 성과로 시장에 어필하고 싶은 게 그의 속마음이다. 그리고 다시 공부에 대한 열정에 사로잡힌다.

“기업도 제대로 모르는데, 술 마시면서 시간 낭비하는 게 사치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종목을 다 알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종목을 제대로 많이 아는 매니저가 되고 싶습니다.”

<장태민 amigo@zeroin.co.kr>(www.funddoct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