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호 본부장의 추리 “만일 금리가 오른다고 치자.”

- 영화 ‘공공의 적’ 패러디 -

“만일 네가 범인이고, 돈이 필요하다고 치자. 그렇다면?” 철중은 이렇게 추론을 하기 시작한다. 결국 그 살인자인 규환(이성재 분)을 체포한다. 이 방법은 금융시장에서도 사용된다. 껄렁한 형사의 추론은 ‘시나리오 분석’이라는 결코 껄렁해 보이지 않는 이름으로 변신 한다.

“공공의 적에 나오는 설경구가 했던 형사 있잖아요,,,그 친구가 이렇게 추론을 하더군요. ‘만일 그랬다 치자. 그러면 어떻게 할거냐?’ 저도 바로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해요. ‘만일 금리가 오른다고 치자. 만일 신용 위험이 커진다고 치자.’ 그러면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데?’ 이렇게 말이죠.”

동양운용 채권본부장 김형호, CFA(43)는 고객 맞춤식 포트폴리오와 회사채 투자에 강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운용계획을 할 때 투자자에게 가장 적합하고 시장 상황이 어떻게 변해도 미리 계획했던 대로 지조 있게 운용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데서 시작한다. 그리고 금리가 하락하는 호기라며 듀레이션을 늘리라는 외압(?)이 거세게 몰려와도 긴 듀레이션이 포트폴리오에 맞지 않는다면 결코 굴하지 않는다. 이런 지조 있는 행동이 먹히려면 무엇보다도 탄탄한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것도 각 상품별로 ‘최적’ 포트포리오를 말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김 본부장이나 고객 모두에게 편안한 잠자리를 보장해 주고 더 나아가서 국민 건강을 증진(?)시키는 애국하는 길이기도 하다.

김 본부장을 두 번 만났다. 두 번 째는 동양운용으로 옮긴 후 인터뷰를 했을 때다. 이 얘기부터 해보자.

§ 두 번째 만남: 김 본부장의 추리

김 본부장은 투자자의 목표와 특성을 정확하고 세밀하게 파악해 거기에 최적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 기관투자가의 경우 투자 목표 수익률, 기간은 물론이거니와 과거 투자 실패 경험까지 모조리 파악 한다. 그리고 거기에 가장 적합한 투자 대안을 제시한다. 최적의 채권을 발굴하고, 현물만으로는 구성이 안 된다면 파생상품을 이용해 목표 수익률이 나올 수 있도록 전략을 짠다.

그가 상품 설계를 배운 것은 조흥운용 설립 당시 상품팀에 있을 때였다. 2년 반 동안 다양한 상품을 연구했다.

“그 때만큼 직장생활에서 행복했던 적도 없었어요.”

매니저인 지금 그 때 만큼 연구에 푹 빠졌을 때 맛보는 정신적 행복은 아니지만 지금은 고객을 만족시키는 행동하는 행복을 찾는다.

“사실 채권펀드 매니저는 시장 자체에 대해서는 제일 잘 알죠. 거기에 고객 니즈만 맞춰주면 금상첨화죠.”

그러나 고객은 늘 2% 부족하다. 김 본부장은 조흥운용이 생겼던 96년부터 98년까지 상품팀에서 보낸 2년 반 동안 고객이 목말라 하는 그 2%를 채워주는 구체적인 방법을 익혔다.

고객이 맡기는 돈마다 성격이 다르다. 개인투자자의 경우 ‘무작정(?)’ 높은 수익률을 바라는 로또성 자금도 있지만, 주택마련, 노후대책 등 구체적인 인생계획과 맞물려 있는 심각한 돈도 있다. 어떤 고객은 특별히 목적이 있진 않지만 그냥 안정적으로 정기예금 이상 수익률만 나와도 만족할 수 있다.

한편 연금이나 보험이 운용하는 돈은 연금 수혜자의 운명과 얽혀 있다. 어떻게? 가입자에게 약정된 시기에 따라 일정 금액을 제공해야 할 의무관계로 말이다. 사실 의무 자체보다는 연금 생활자에게 연금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을 경우가 더 큰 문제다. 연금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을 당사자에게는 9.11 테러급 재앙이 될 것이다.

그래서 개인이건 기관이건 가장 적합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능력과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계획대로 운용할 수 있는 보통 사람 이상의 ‘원숙한 고집’이 필요하다.

투자계획을 세울 때는 목표 수익률, 이 수익률을 달성하는 데 감내해야 하는 위험도, 투자 기간, 투자자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상황, 법률적 제약 조건 등을 모조리 알아야 한다. 김 본부장은 투자가의 과거 실패 역사까지 죄다 들춰낸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교훈을 통해 미래 발생할 실수를 줄일 수 있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위험 감내도를 알아내기 위한 것이다. 위험 감내도는 목표 수익률을 결정하는 데 핵심 요소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는 껄렁한 철중, 아니 신중한 형호는 이런 고민에 빠진다.

 “만일 내일 금리가 오른다 치자.”

그는 유리한 상황에서부터 불리한 상황까지 가정을 한다. 국공채만으로는 원하는 성과를 이뤄낼 수 없으면 회사채를 고른다.

흔히 회사채라고 하면 신용위험(크레딧 위험)부터 떠오른다. 말이 좋아 신용위험이지 대우사태, SK글로벌, 카드채 사태 등은 회사채와 금융채의 신용을 땅에 떨어뜨리다 못해 무덤을 파고 묻어 버린 금융 역사에서 가장 아픈 과거 중의 하나다. 내노라 하는 대기업의 신용불량 사태에 조건화된 우리 국민은 심한 경우 경기까지 일으킬 정도다.

그러나 회사채도 나름이다. 옥석을 제대로 가려내기만 한다면 이 만큼 매력적인 투자 대상도 없다. 회사채를 논할 때 채권업계에서 김 본부장을 빼 놓을 수 없다. 그는 회사채 분석에 탁월한 분석력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우채 사태 당시 누구보다 뼈저린 경험을 했던 터라 회사채를 고를 때는 꼭 기업탐방을 가서 눈으로 확인을 한다.

채권의 특성을 두 가지로 표현하라고 하면 하나는 위에서 말한 신용위험이고, 다른 하나는 금리 민감도를 나타내는 듀레이션이다. 김 본부장은 어떤 펀드에 적합한 듀레이션 수준을 정해 놓으면 세상 모두가 금리 하락 예측을 외쳐대도 듀레이션을 함부로 늘리지 않는다.

조흥운용에 있을 당시 그가 애지중지 하던 조흥 BEST CHOICE 4호는 규모가 1조 5천억원이 이르는 대형 펀드다. 이 펀드의 투자자들의 위험감내도는 정기예금 금리에 만족하는 개인투자자 수준정도다. 이 상품 특성에 적합하게 일부러 짧게 맞춰 놓았던 듀레이션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절대 늘릴 수 없었다. 이것이 김 본부장의 철학이고 양심이다.

§ 첫 번째 만남: 이상한 MOU

5월 초, 여의도에 있는 모 은행 지점장의 점심 식사에 초대를 받았다. 이 자리에 김 본부장도 동석을 했다. 그 지점장과 김 본부장은 예전 직장에서 같이 근무했던 인연이 있다고 했다.

김형호 본부장이 지난 5월 새 직장에 출근하면서 처음으로 한 일은 포트폴리오를 다듬거나 운용 프로세스를 정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채권본부 매니저들과 이상한 MOU를 맺었다. 이게 뭐냐고?

“서른 중후반이면 한참 일하고 자기 계발을 할 때죠. 대한민국에서 여의도에서 직장 다닌다는 것은 그 만큼 혜택을 많이 누리는 겁니다. 그렇다면 자기 실력을 늘리고, 외국 기관들하고도 당당하게 영어로 의견을 피력하고(=외국인들에게 일방적으로 당하지 말고), 국내 투자자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우리 책무죠."

그래서 채권 매니저들은 어떤 사람은 기꺼이, 때론 울며 겨자 먹기로 ‘자기계발 MOU’를 맺었다. 어떤 이는 야간에 대학원에 나가기도 하고, 어떤 매니저는 뒤늦었지만 투자 전문 자격증을 준비하기로 했단다. 그럼 김 본부장의 MOU는 무엇이냐고?  50살이 됐을 때 자유롭게 영어를 구사하겠다는 것이다. 카투사 출신이라서 상당한 수준일 터인데도 듣는 사람 부담되게 지나친 겸손을 보인다.

공교롭게도 공공의 적에 나오는 연쇄 살인자 규환의 직업은 펀드 매니저다. 돈을 벌 수 있다면 부모도 죽이는 광인이다. 그런데 그 흔한 신용카드 한 장 갖지 못한 소외된 계층을 보며 사회적 책임감을 느끼는, 각종 사회적 혜택을 다 누리는 ‘가진 자’의 죄책감마저 느끼는, 그래서 펀드 매니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보통 사람보다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는 것이라고 대차게 강조하는,,,김형호 본부장의 직업도 펀드 매니저다.

<정승혜, CFA>(www.funddoct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