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마음으로 이상향을 꿈꾸는 지혜자

“얼굴이 깨끗한 소년이요!!” 띠띠~~(확실하게 틀렸다는 부저 소리다.)

왜 틀렸냐구? 둘 다 굴뚝을 청소했는데 한명은 얼굴이 더러워지고, 한명은 깨끗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지혜서 탈무드에 나오는 한 얘기다. 틀에 박힌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보다 유연한 사고를 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펀드매니저들은 이런 지혜를 꿈꾼다. 돈을 운용하는데 웬 지혜를 운운하냐고?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주식시장에는 자연과학에서부터 사회과학, 예술, 종교 등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이 모든 것을 두자로 줄여서 ‘철학’이라고 부른다. 결국 펀드매니저는 크건 작건 모두 철학자인 셈이다.

임창규(林昌奎) 삼성운용 주식운용팀장(40)은 매니저라면 탈무드의 일화처럼 유연하고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제 했던 생각을 오늘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자기 생각의 함정에 빠져 투자 기회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중심 없이 휩쓸리는 변덕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임매니저는 90년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운용에 몸을 담기 시작한 것은 96년 삼성생명 주식팀부터다. 그 후 삼성생명투신운용을 거쳐 지금까지 약 10년 동안 ‘삼성’에서만 운용을 해 온 삼성맨이다.

삼성운용은 최근 회사에서 만든 공통의 모델 포트폴리오를 상당 부분 따라야 하는 운용 방식에서 벗어나 펀드매니저의 재량권을 상당히 확대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이렇다.

“매니저는 자기 집을 짓는 사람들 입니다. 물론 설계도를 들고 그대로 짓는것도 자기 집을 짓는 거겠지만, 진정한 의미의 자기집은 아니죠.”

. 물론 삼성운용은 팀운용을 포기하지 않았다. 팀운용에 대한 정의를 다르게 내리고 사용 방법을 바꿨을 뿐이다.

“제가 보는 팀운용은 일괄적으로 똑 같은 집을 짓는 게 아니라 남의 집이 어떻게 세워지는지 보면서, 피드백을 서로 주고 받으면서 나만의 집을 지어가는 것입니다.”

삼성운용은 시장 전망에 따른 마켓 타이밍도 하지 않고 종목으로만 승부를 건다. 거기다가 매니저가 임의대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면,,,!?

그렇다. 여기서 위험관리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매니저에게만 맡겨 둔다면 위험관리는 어떻게 할까?

삼성의 운용 프로세스를 보면 그 답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리서치 팀은 이 종목들을 갖고 섹터비중이 시장과 같도록 리서치 포트폴리오를 만든다. 따라서 이것은 시장을 60% 이상 설명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한편 운용본부도 매니저들이 합의를 본 본부 포트폴리오를 만든다. 각 매니저는 이들 포트폴리오에 전혀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운용을 하지만 리서치나 운용본부에서 만든 포트폴리오가 푯대로 세워져 있으니 엉뚱한 곳에서 길을 잃을 염려는 거의 없다.

또 한가지 방법이 있다.

이것은 운용업계에서도 엄격하기로 유명한 컴플라이언스(Compliance)를 가동 시키는 것이다. 매니저는 자기의 매매에 대한 소명 의무가 있다. 어디나 있는 과정이지만 사실상 삼성운용은 ‘저렇게까지~~’혀를 내두를 정도로 이 반도체 회사의 클린룸에서는 마이크론으로 측정되는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해야만 한다.

자유가 맘껏 보장되고, 이 자유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지혜자의 직관과 자신감이 필요하다. 팀장이 아닌 개별 매니저로서의 임매니저가 집 짓는 과정을 잠시 살펴보자.

액티브매니저는 잘못된 가격결정을 발견하는 사람들이다. 시장의 아이디어가 잘못됐는지 여부는 매니저의 아이디어로 가늠한다. 대부분 비슷한 과정을 거치지만 이 속에서 무엇을 찾아내느냐 하는 것은 말 그대로 매니저의 역량에 달려 있다. 이것을 직관이라고도 하고 지혜라고도 부른다.

“시장의 합의는 애널리스트의 평균 전망치가 아니라 시장가격(Market price)이죠. 여기서 시장의 투자 아이디어를 파악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나의 아이디어는 무엇인가? 이 둘의 괴리가 클수록 투자 기회가 생기는 것이고 여기에 내 집을 짓는 겁니다.”

투자 기회를 포착하고 실행 할 수 있는 원동력은 아이디어에 대한 자신감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시장의 힘을 결코 무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규모와 확률이라는 두 가지 축에서 아이디어를 실행한다.

“한 축은 아이디어에 대한 규모(magnitude)고, 다른 쪽 축은 확률(probability)이죠. 규모라는 것은 시가비중이 큰 종목에 대한 아이디어로 포트폴리오에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설령 주가가 오를 확률은 적다고 해도 말입니다. 반면 확률, 즉 자신감이 크다는 것은 작은 종목에 대한 건데요,,,음,,,내가 아무리 주가 상승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도 종목 크기가 작으면 포트폴리오에 미치는 영향은 작습니다. 이 두 가지 축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 비중을 결정하는 겁니다.”

시장의 힘은 어느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절대 절명의 위력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시가총액이 크다고 있는 그대로 싣는 것은 아니다. 무겁다 싶으면 조금 덜어내고, 가벼워지면 좀 더 싣고 가는 매니저의 지혜가 중요한 것이다.

매니저들은 이것을 기르기 위해 경제 잡지를 열심히 읽거나 모니터의 복잡한 시장 그래프들의 꿈틀거림을 파악하려 애쓴다. 그러나 임매니저가 지혜를 추구하는 방법은 독특하다. 그는 지혜의 원천을 묻는 질문에 주저하지 않고 ‘성경’이라고 답한다. 기독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성경이 최고의 베스트 & 스테디 셀러면서 지혜서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얘기다. 그리고 앞에서 인용했던 탈무드도 청소년 필독서 중에 항상 들어가듯 이스라엘의 교육과 지혜에 대해서는 세계적으로 관심이 굉장히 높다.

또 한가지 방법은,,,

매주 월요일 늦은 7시. 임매니저는 월요일 저녁마다 삼성운용 모닝 미팅룸에서 가나난(Gananan)포럼 멤버들을 기다린다. 가나난 포럼은 86년 몇 개 대학교에서  다양한 주제들을 놓고 토론을 하는 영어 모임으로 시작했다. 가나난(Gananan)은 성경에 나오는 이상향인 가나안과 우리말의 가난한의 합성어로 “가난한 마음으로 이상향을 꿈꾼다”는 뜻으로 낮은 마음으로 지혜를 갈구하는 당시 젊은 대학생들의 마음이 잘 담겨 있다. 임매니저는 이 포럼의 창립멤버중의 하나로 이제는 여의도 한복판에서 이 모임을 번창시켜나가고 있다. 이 모임의 특징은 고등학생에서부터 국내외 저명 인사들까지 누구나 자유롭게 와서 서로의 지혜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운용에서는 이 모임을 위해 평상시엔 외부인 출입이 엄격하게 금지된 이 문을 이 때 만큼은 활짝 열어 놓는다. 진정 지혜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다. <정승혜, CFA>(www.funddoctor.co.kr)

임창규 매니저는 연세대 경제학사, 경영석사를 마친 후 삼성경제연구소를 다니던 중 94년  캐나다 토론토에 위치한 온타리오 신학교(Ontario Theological Seminary)에서 석사학위를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