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갑자기 치즈가 없어졌다.

꼬마인간인 허와 햄이 치즈가 쌓여 있는 C 창고에 도착했을 때 무척 당황했다. 항상 있어야만 했던, 아니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치즈가 없어진 것이다. 매일 조금씩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았던 그들은 눈앞에 벌어진 현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생쥐인 스티프와 스커리는 창고에 매일 아침 일찍 도착해서 혹시 어제와 다른 변화가 생겼는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아보고 긁어보기도 했다. 그래서 치즈가 없어졌을 때 변화를 수용하고 주저 없이 다른 치즈를 찾아 나섰다.

이 얘기는 스펜서 존스(Spencer Johnson, M.D.)의 베스트셀러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Who moved my cheese?)”의 줄거리 일부다. 여기서 치즈는 직업, 인간관계, 재물, 건강, 혹은 영적인 평화 등 우리가 얻고자 하는 어떤 것도 될 수 있다. 매니저에게 치즈는 분명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이다. 설령 산더미같이 치즈가 쌓여 있는 치즈창고를 발견했다고 해도 항상 변화를 감지하고 상하지나 않았는지 냄새를 맡아봐야 한다. 그래야만 치즈가 없어져도 당황하지 않고 곧 다른 치즈를 찾을 수 있는 대처 능력이 생긴다.

PCA운용의 강신우자산운용본부장은 이 책에 등장하는 생쥐처럼 변화에 항상 주의를 기울리고, 유연한 사고방식을 갖고 시장 흐름을 기가 막히게 읽어낸다. 공교롭게도 강본부장은 십이간지(十二干支)의 첫번째 동물인 60년생 쥐띠. 성과가 수익률로 분명하게 나타나는 이 업계에서 장수매니저로서 두각을 나타내는 대부 매니저다. 2000년 현대투신(현 푸르덴셜자산운용) 바이코리아 열풍 때 성장형인 나폴레옹 시리즈 1조 6천억원 규모를 운용하던 큰 손이다. 푸르덴셜 자산운용의 성장형 규모가 8,400억인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큰 자금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PCA 운용의 펀드 성과에는 강본부장의 13년간의 경험이 농축돼 있다. 특히 중국발 쇼크 때 빛이 났다. 중국쇼크 이후 내노라 하던 펀드들도 배당주 펀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PCA의 대표적인 성장형 펀드 PCA업종일등주식D-1, PCA베스트그로쓰주식A-1는 하락 구간을 비껴갔고, 8월~9월 연속 강세장 속에서도 상승탄력을 잃지 않았다. 그간 이뤄진 섹터별, 종목별 비중 조절 작업을 보면 감탄을 할 수 밖에 없다. 잦은 포트폴리오 교체라고 비하할 수도 있지만 그냥 그렇게 밀어 놓기엔 포트폴리오에 배어 있는 강매니저의 직관과 경험의 냄새가 너무 짙다. 비결을 물었다.

“운이 좋았죠. PCA도 더 검증 받아야 하구요,,,저는 말할 것도 없죠.” 겸양으로 은근 슬쩍 넘어가려는 것을 좀 더 솔직한 대답을 요구하며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PCA에서는 매니저들이 애널리스트의 역할을 겸하고 있다. 각 섹터별 담당매니저가 분석해서 들고 온 후보 종목들을 탁자 위에 쏟아 놓고 갑론을박이 시작된다.

여러 종목 중 어떤 것에 얼만큼 비중을 줘야 하는지 결정할 때 강본부장은 우선주와 배당주에 포인트를 줬다. 강본부장은 PCA의 일반 성장형 펀드에다가도 배당성격을 가미해 운용을 한 것이다.

“우선주 덕을 봤지요. 예를 들어 삼성전자, 현대차를 편입하되 우선주를 일정수준 꼭 들고 가는 거죠. 배당주에 대해서도 일찍부터 강조를 했어요. 주식투자는 배당수익률에 대해서 자본이득(Capital gain)보다 너무 수익률이 작은 배당수익률을 믿고 투자하는 것에 내심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그들은 상황이 바뀐 것을 간과한 거죠. 지금처럼 저금리 상황에서는 배당수익률이 높은 주식에 투자자들이 몰릴 수 밖에 없는데…”

올 한해 결산을 하기엔 아직 이르지만 올해만큼 배당주가 대박을 터뜨린 해도 드물다. 배당주펀드들은 배당수익률을 주는 만큼 하락장에서 방어력도 센 편이다. 그러나 상승장에서는 상대적으로 밀리는 편인데, 올해는 상승장에서도 공격적 성향을 가진 펀드들보다 결코 뒤지지 않았다. 저금리 기조와 제대로 기가 막히게 맞물린 것이다. 배당전용펀드가 아니면 배당종목이나 우선주 비중을 높이는 게 부담스럽다. 몰라서가 아니라 샀다가 유동성 문제 등이 걸려 실천을 못한다.

그런데 펀드 운용은 반 이상이 경험이다. 오랜 시간을 시장에서 살아온 그는 다른 사람들의 두려움 위에서 시장을 바라보기 때문에 실천하기가 수월하다. 나와는 다른  조직원들을 설득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주식을 오래 하다 보면 철학자가 되죠.”

강본부장은 91년 11월 한투운용(구한국투자신탁)에서 매니저를 시작했다. ‘똑똑하고 성실한’ 사람이면 한 번쯤 들렸다 가는 자리였다. 그런데 이듬해인 92년부터 PER혁명의 깃발을 앞세우고 외국인이 한국 시장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순환보직식이었던 이 자리에도 변화가 일면서 강본부장처럼 ‘잘하는’ 매니저는 계속 남게 됐다. 96년 동방페레그린으로 옮길 당시에는 3대 투신사(한투, 대투, 국투)인력을 다른 운용사에서 빼가면 일정 기간 약정이 정지되는 불문률 같은 게 존재하던 때다. 그러나 공격적 성향이 짙은 동방페레그린이 위험을 무릅쓰고(?) 강본부장을 영입하면서 억대 연봉을 받는 매니저 스카우트 시대가 열렸다. 한 시대를 연 장본인이기도 하다. 마흔 초반이면 수명을 다 한다는 펀드운용업계에서 아직도 스포트라이트의 한 가운데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매니저마다 자신의 철학과 신념을 갖고 운용을 하지요. 매니저들의 공통적인 가치관 중의 하나가 “가치투자(Value Investment)”라는 것인데 누구나 싼 종목을 찾아낸다는 의미에서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만 종목이 적정 주가로 오르기까지 시간의 개념을 얼만큼 반영하느냐에 따라 매니저마다 같은 종목에 대해 서로 다른 심상을 부여하기 마련입니다. 어떤 종목이 내재가치보다 싼 것은 분명한데 시장이 언제, 또 얼만큼 쳐 줄거냐 이 말이죠..”

이런 상황에서는 철학자의 관조적인 시각을 갖고 시대의 흐름을 읽어 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어떤 종목이 너무 오래 오르지 않아서 오늘 팔았는데 내일 오르면 이 또한 낭패다. 강본부장은 90년 초~2000년 초반까지 10년을 “유연한 사고에 의한 상상력이 작용하던 때”라고 부른다. 상상력이라는 말은 주가는 현재 시점으로 끌어온 시장참여자들이 합의한 미래의 값이라는 의미일 게다. 강본부장은 이 가치를 유연한 사고를 통해 보다 빨리 실현시켜 왔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죠. 지금은 종목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통해 투자를 해야 합니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 강본부장과 만난 장소는 여의도에 위치한 어느 외국계 프랜차이즈 샌드위치 가게. 강본부장은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먹더니 바로 이 샌드위치 가게가 한국으로 들어오기까지의 역사 얘기를 꺼꺼냈다. 얘기는 어느 새 프랜차이즈 업황 분석과 스타벅스의 글로벌 전략까지 흘러가고 있었다. 식사를 하면서도 종목분석을 하는 것이 강본부장의 일상화된 생활인 것이다. 스티프와 스커리가 치즈 창고에서 어떤 변화가 없는지 살피고 냄새를 맡는 모습이 자꾸 오버랩됐다.<정승혜,CFA> (www.funddoct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