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 - 자기자본의 경계를 넘나드는 크로스 오버 투자

현대 음악은 크로스오버(Cross-over)라는 특징으로 표현되곤 한다. 이것은 쟝르의 벽을 허물고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면서 자유로운 음악 세계를 추구하는 아티스트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명작을 만드는 데 영역간의 금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투자가 사이언스가 아닌 다분히 아트적 속성이라는 점에서 권혁상 매니저의 접근 방법이 크로스오버 뮤직을 추구하는 음악가의 그것과 매우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권매니저(31)는 교보생명을 거쳐 2000년 9월에 대한투신으로 자리를 옮겼다. 백오피스를 거쳐 지금은 채권 운용과 함께 회사의 유동자산 관리를 하고 있다. 5년차 경력으로 팀 내에서는 가장 막내지만 그가 운용하는 클래스1장기채권S-1은 설정고 8,000억원 규모를 갖고 있는 명실상부한 회사의 대표펀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 펀드는 자금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개인고객’만 태우는 개인용 펀드다. 기관손님은 매우 제한된 소규모 수준에서만 받는다. 순전히 개인 돈으로만 이 만큼의 규모를 일궈낸 것이다.

비결이 뭘까?

먼저 대한투신의 채권운용조직 구조를 보자. 채권1팀(사모팀)과 2팀(공모팀)으로 나뉘어 있고 이 중 권매니저가 소속돼 있는 2팀은 회사 펀드들의 유동자산조달 업무도 같이 담당하고 있다. 바로 이 부분을 권매니저가 책임지고 있다.

따라서 자연히 유동자산 시장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고 조금이라도 유리한 금리 조건으로 종목을 편입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게 됐다.

채권 펀드 내에서 유동자산은 자칫 관리가 소홀해 질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러나 유동자산을 제대로 관리하는 것은 펀드의 수익률 경쟁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지금과 같이 저금리 상황에선 더 그렇다.

‘사람들은 유동자산 시장에 대해서 많이 아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더라구요. CP, 콜, 예금시장,, 다 같은 유동시장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죠. 각각 너무 다르고 같은 CP라도 시기와 발행자에 따라 금리 차이가 많이 납니다. 저는 모든 펀드의 유동자산 조달을 해주다 보니까 자연히 각 시장의 특성에 대해서 체득한 거죠. 운이 좋았어요.’

유동성 부분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권매니저는 본격적으로 진흙 속에 묻혀 있는 진주를 찾는 작업에 들어간다.

채권투자자는 부채에 대해서, 주식투자자는 자기자본에 대해 투자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각각의 가치평가를 하는 방법이 상이하므로 부채와 자기자본 사이에 금을 그어 놓고 서로의 영역에 다소 무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이 금을 박박 지운다. 크로스 오버 아티스트가 되는 것이다.

종목 선정 방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클래스1 S-1호의 탄생 배경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클래스1 S-1호는 간접투자시장의 아픔 속에서 태어났다. 2003년 간접투자시장은 SKG와 카드채 사건으로 투자자에게 신뢰를 잃을 대로 잃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위기가 곧 기회라고 했던가? 당시 문제가 됐던 카드채 이외에도 카드, 캐피탈 등 금융채는 물론이고 회사채까지도 모두 한 통속(?)으로 취급을 받아 가격이 무척 떨어졌던 때였다. 그래서 투자자의 매기가 국채 쪽으로만 쏠리는 안전자산선호현상이 나타났다.

개인들 자금은 투신권에서 많이 이탈했다. 법인들 자금은 단기 자금이라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개인들을 잡지 못하면 간접투자시장은 문을 닫아야 한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고금리를 주면서도 안정적으로 운용되는 상품을 만들어야 겠다는 것이었고 이것을 회사에서 받아줬다.

‘그 당시에 카드사와 캐피탈 회사들이라고 다 나쁜 건 아닌데 모두 저평가돼 있었어요. 게다가 카드채 여파가 회사채까지도 미쳐 있었죠. 이 중에서 괜찮은 회사를 골라내서 투자하면 된다고 생각했죠.

주가가 제자리를 찾아가듯 채권가격도 제자리를 찾아간다. 펀더멘털만 우수하면 절대 부도가 날 염려가 없다는 단순한 진리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저평가된 기업 찾기에 나섰다.

 ‘전체적으로 경기가 나쁘기 때문에 가격이 낮을 뿐이고 펀더멘털대비 저평가 된 기업은 괜찮다고 판단합니다. 예를 들어서 S카드의 경우에는 S은행에서 유동성라인을 확보하고 있어요.. 카드사는 유동성만 파악하면 절대 부도 위험이 거의 없거든요. 이런 종목을 골라서 투자했죠.

주식의 접근 방법도 적극적으로 도입한다. 즉 영속가치를 보는 주식시장을 통해 채권시장에서의 청산가치를 찾아내는 것이다. 같은 회사에서 발행한 유가증권에 대해서 주식 시장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파악하면 채권시장의 동향에 대해서도 감이 잡힌다.

권매니저는 회사를 알기 위해서 기업방문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통신사업자라면 신규 서비스가 터무니 없는 것인지, 과연 돈이 될만한 것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 가입자로 가장하고 전화도 한다.

유동자산과 채권자산은 이렇게 채웠다. 그리고 이것들을 하나의 펀드 안에서 목표대로 고수익을 올리기 위해서 그는 자산-부채 매칭 전략을 빌렸다. 이것은 보통 생명보험사와 같이 가입자에게 미래에 지급해야 하는 부채를 안고 있는 기관에서 흔히 사용하는 기법으로 자산 운용을 부채의 만기수익률에 맞춰 놓고 운용을 한다.

권매니저가 이런 매칭 방법을 이용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의 장단점을 잘 파악하고 있는 겸손한 주제파악에서 나온 결론일 수도 있다.

‘솔직히 내일금리에 대해서는 모르겠어요. 다만 제가 잘 하는 것은 CP로 찍을지 채권으로 찍을지, 그리고 만기는 3년짜리가 적당한지 1년짜리가 적당한지를 결정하는 거죠. 그리고 기간-수익률 구조를 보고 만기까지 보유 할 것, 중간에 팔 것을 결정하는 겁니다. 물론 제 전공인 유동성부분에 대해서는 신경을 가장 많이 씁니다.

그런데 이러한 매칭 전략은 일정 만기수익률을 돌려줘야 하므로 수익률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약점이 있다. 그러나 권매니저는 유리한 조건으로 채권(유동자산 포함)으로 채워 넣기 때문에 지금까지 안정적이면서도 경쟁력 있는 수익률을 거둘 수 있었다.

수익률은 수익자에게 귀속된다는 원칙에 따르자면 펀드 운용에서 ‘부채’라는 개념을 도입한다는 것은 오버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것이 펀드의 안정성을 확보하게 된 철저한 고객 관리의 원천이 됐다.

궁극적으로는 외부 고객인 투자자에게 다가서기 위해서 먼저 내부고객부터 챙기기 시작했다. 대투증권의 전국의 주요 지점을 다 돌았다. 월별, 분기별 자료를 만들어서 고객의 궁금증을 최대한 해결해 주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노력은 자금의 안정성으로 이어졌고 설령 일시적으로 수익률이 나빠졌다고 해서 고객들이 돈을 쉽게 빼지 않을 만큼 신뢰를 쌓았다. 자금의 안정성을 확보했기 때문에 그 만큼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운용을 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된 것이다.

회사 내에서는 5년차 막내지만 고객 관리 정성 만큼은 맏형 수준이다. 이것이 투자자의 신뢰라는 보이지 않는 알파(Invisible Alpha)를 만들어 낸 것임에 틀림 없다.

<정승혜>(www.funddocto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