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4일. 이 날은 대한민국 금융계에 큰 변화를 가져올 법률이 시행된 날이다. 바로 자본시장통합법(정식명칭: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일명 자통법)이다. 하지만 세계를 경기침체로 몰고 간 금융위기의 여파 때문인지 이 법률을 제정할 당시의 떠들석한 분위기에 비해서 막상 시행되고 난 이후에는 매우 조용한 분위기이다. 금융규제에 대한 논의가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금융규제를 대폭 해제하는 이 법률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은 금융 선진국에 비해서 규제가 많은 나라였고, 그렇기 때문에 자통법의 필요성은 대부분 공감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피부로 느껴지는 변화는 없을지 몰라도 머지않아 우리의 경제 생활에 폭넓게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자통법이 가져올 변화를 금융 소비자의 입장에서 조명해보고자 한다. 법의 내용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모든 점을 다룰 수는 없겠지만 현명한 금융소비자가 되기 위해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필요가 있는 사항을 살펴보기로 하자.

자통법에 의한 가장 큰 변화는 금융투자상품의 규제에 있어서 열거주의(포지티브 방식)에서 포괄주의(네거티브 방식)로의 전환이다. 이전의 자본시장 관련 금융법은 유가증권의 범위를 사전적으로 열거하고 있는 체제였다. 예를 들어 증권거래법 및 시행령 등에서는 유가증권을 주식, 채권, 파생상품 등 21개로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파생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초자산으로는 유가증권, 통화, 일반상품, 신용위험 등 4가지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선물 거래법에서도 선물거래의 종류를 선물, 지수선물, 선물옵션, 옵션, 지수옵션 등 5가지로 한정하고 있다.

금융회사들은 이렇게 정의되어 있는 범위 안에서만 금융상품을 만들고 취급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상품을 설계하거나 매매하기 위해서는 관련 법령을 개정해야만 했다. 새로운 상품을 만들고자 할 때마다 법적으로 가능한지가 사전적으로 불분명하기 때문에 금융발전을 제약하게 되는 문제점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에 더해 법령을 개정하여 규율을 마련하기 전까지는 투자자 보호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는 문제점도 생기게 된다.

그래서 자통법에서는 열거주의가 아닌 포괄주의 방식을 적용하게 된다. 즉, 자본시장에서 생산되거나 유통될 수 있는 금융상품에 대해 그 개념을 최대한 넓게 정의하여 금융투자회사의 상품개발을 제한하지 않고 투자자 보호의 공백을 없앤 것이다. 자통법에 의하면 ‘투자성’(원본손실 가능성)이라는 특징을 갖는 모든 금융상품을 포괄하여 ‘금융투자상품’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렇게 포괄적으로 정의하면 이 정의에 해당하는 모든 금융상품은 법의 적용을 받게 되므로 자연히 금융투자회사가 취급할 수 있게 되고, 동시에 투자자 보호 제도가 적용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금융 소비자들에게 무엇을 의미할까? 앞서 언급했듯이 자통법에 의한 변화를 소비자들이 빠른 시간 안에 느끼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딱 10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그 당시만 해도 소비자들이 생각해왔던 금융 상품의 개념에는 주식, 채권(예.적금), 부동산 등이 전부였다. 그리고 이러한 자산들은 오로지 관련시장이 활황일 경우에만 그 열매를 얻을 수 있었고, 이런 자산들에 대한 변화와 시장에 대한 관심은 해당 투자자들만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변했다. 관련이 없는 자산과 시장들이 서로 밀접한 연관을 가지며 움직이기 시작했고, 투자의 대상 역시 빠르게 확산 되었다. 10년 전만 해도 생소하던 상품들, 이를테면 ELS, ELF, 선박펀드, 유전펀드, 헤지펀드, 와인펀드 등의 상품명이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가 되었다. 그리고 자통법에 의해서 이제 더욱더 다양한 상품들이 우리 앞에 선보이게 될 것이다. 특히 많은 파생 상품들을 통해서 일반 투자자들도 이제는 단지 수익을 얻기 위함이 아닌 위험을 관리하기 위한 수단으로 금융 상품을 이용하게 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기초지식 없이 현란한 광고에 의해 투자하던, 또는 단지 수익률만을 쫓아 투자하던 습관은 버려야 한다. 그런 습관을 바꾸지 않는다면 자통법이 가져올 새로운 투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남들보다 뒤떨어지는 금융 소비자가 될 것이다. 이제부터는 성급한 투자보다 경제환경과 상품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꼼꼼한 투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본인 단독으로 판단하여 투자를 결정하기 보다는 금융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 본인의 자산을 보다 체계적이고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전쟁이 기술’이라는 책에 보면 ‘반복이 창의력을 대체하면 치명적인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전쟁의 패배 원인을 분석해 보면 과거에 집착해서 반복이 창의력을 대체한 경우가 많았다. 오늘날 우리가 처한 금융 환경 역시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자통법에 의해서 그 전쟁의 양상은 더욱 복잡해 질 것이다. 철저한 준비를 통해 이 금융 전쟁에서 살아남는 금융 소비자가 되기를 바란다.